디자인은 단순, 명료, 정직해야 한다
'간결한 것이 더 아름답다'는 근대 건축의 거장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추구한 건축철학의 핵심 메시지다. 당시 그의 발언은 건축과 디자인에서 혁명적 발상이자 이전 시대의 건축정신이 막을 내렸음을 의미했다. 그의 철학은 이후 디자인, 예술을 포함한 산업 전반으로 퍼졌다. 그의 영향을 받은 독일 제조사 브라운의 디터 람스는 40년 동안 디자인 팀을 이끌며 '디자인은 단순, 명료, 정직해야 한다'는 철학으로 기능에 충실하고 장식이 배제된 제품을 선보였다. 그는 디자인에 대한 명확한 철학이 있었다.
“디자인은 단순해야 하며 그것이 진정한 품질이다. 군더더기를 붙이지 않고 금방 싫증이나 버려지게 될 것은 만들지 않는다."
디터 람스는 ‘좋은 디자인(Good Design)은 혁신적이며 유용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제품에 대한 이해를 돕고 정직하면서도 친환경적인 최소한의 디자인이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제품의 본질을 파악하고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 그의 제품들이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이다.
그의 철학에 영감을 얻은 브랜드들은 산업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 포진되어 있다. 예로, 애플 역시 아이폰과 아이팟의 디자인의 뿌리는 디터 람스의 실용적이면서도 차별화된 디자인을 적용한 생활가전제품에서 기인하였다고 고백하였다. 스티브 잡스가 'Simple is the Best'라는 명언을 남긴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제 그의 유산은 전자기기뿐만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중 생활공작소는 주위와 잘 녹아들 수 있는 디자인에 제품의 목적에 부합하는 최소한의 성분을 담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일상용품을 만들며 '기본을 지키는 것'의 가치를 가장 중시한다. 디터 람스의 철학이 느껴지는 이 브랜드는 어떻게 시작되었던 걸까?
생활공작소의 서막
생활공작소를 시작한 김지선 대표는 경험이라면 누구와 견줘도 지지 않을 정도로 풍부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IT기업에 웹디자이너로 취업을 했지만, 자신에게 천부적인 미적 감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커리어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졌다. 고용주는 신입 고졸 웹디자이너가 다른 디자이너들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다른 한 가지가 있다고 믿었다. 바로 대인관계 능력이었다. 충분히 갈등으로 번질 수 있는 사안도 그가 나서면 모든 이해관계자가 쉽게 수긍하였다. 고용주는 영업이 적격이라고 생각하여 그에게 영업직으로 전환을 제안하였다.
고용주가 인재를 알아보는 능력이 탁월했던 것인지 그가 대인 영업을 맡자 꾸준한 성과가 이어졌다. 그 덕분에 제품 기획까지도 맡게 되었고, 소비자들의 욕구와 니즈를 깊이 파악하는 능력을 키웠다. 그는 20대에만 해도 필리핀에서 망고 수입, 중국에서 애견사료 수출 등 다양한 사업을 시도하고 성공했다. 그리고 남들이 꺼려하는 해외 오지에서 IT 관련 사업을 시작하여, 개인이 겪을 수 있는 업무의 모든 고난과 도전을 직접 극복하며 배웠다. 그렇게 해외에서 번 돈으로 국내로 돌아와 광고회사를 차렸고, 다른 브랜드의 제품을 홍보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한 분야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생활용품인데 각각의 목적에 맞게 기본에 조금 더 충실할 순 없을까?'
주변에서는 생활용품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라고 하며, 변화가 느리고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기본에 충실한 제품이라면 시장에서 충분히 주목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혼자서 하는 것보다 이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력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더 커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자신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을 만나고 설득하는 일은 자신있었지만, 제품 기획, 제조, 유통 등은 경험이 부족했다. 그래서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전문가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국내 생활용품 시장에 대해 잘 알고 있고, 고객의 니즈를 잘 파악할 수 있는 유통 전문가를 영입했다. 그리고 세계적인 외국계 소비재기업에서 제품의 브랜딩과 마케팅을 담당해온 브랜드 마케터를 영입하여 제품의 전체적인 브랜딩 총괄업무를 맡겼다. 마지막으로 제품 제조와 관련하여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을 모셔왔다. 각자의 전문분야가 명확한 4명이 모여서 업무를 진행하니 일사천리로 흘러갔다. 김지선 대표는 본인이 대표지만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전권을 주고, 옆에서 조언과 도움을 주는 역할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생산한 첫 제품
사실 생활용품은 기술력도 기술력이지만 초기 자본을 많이 필요로 한다. 제품 외주생산을 맡기려면 상당한 초도생산물량을 약속해야 하는데 이제 막 생활용품 브랜드로 시작하는 생활공작소에는 자금은 물론 신뢰도 부족했다. 그럴 때마다 김지선 대표는 팔을 걷어붙이고 제조공장을 수시로 드나들며 공장 관계자들과 식사는 물론 술자리도 함께하며 관계를 형성했다. 공장 관계자들은 아무리 매몰차게 밀어내도 넉살 좋게 다음 날 또 공장문을 두드리는 김지선 대표를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어느 날 한 공장장이 김지선 대표를 불렀다.
"김대표, 내가 졌다. 졌어. 내가 뭘 어떻게 해주면 되겠어?“
"공장장님, 이전에 말씀드렸던 제품 최소생산 수량 1만 개인 거 잘 아는데 저희 사정이 딱하니 2천 개만 먼저 생산해주실 수 없을까요? 그렇게 해주시면 제가 그 물건을 1달 이내 다 팔고 다음 생산에는 3천 개 이상 주문 넣을게요. 그동안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 누구보다 잘 팔 자신 있으니 한 번만 믿어주세요.“
공장장은 지난 몇 주간 공장을 집처럼 드나든 한 김지선 대표의 노력이 가상하여 속는 셈 치고 그의 요청대로 소량의 제품을 생산해주었다. 그렇게 겨우 재고를 확보하고 직접 판매에 나섰는데 인지도가 낮은 기업의 상품을 받아주는 유통업체가 없었다. 판매할 제품을 선정하는 MD 입장에서는 인지도 없는 제품을 입고시키는 것이 큰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생활공작소는 이때 이러한 시선과 편견을 역이용하는 방안을 생각했다. 당시 대부분 생활용품은 수익률이 낮았기에 비용을 최소한으로 하고자 제품 상세페이지나 제품 이미지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생활공작소는 없는 예산을 쪼개고 쪼개서 전문사진작가에게 촬영을 맡기고 단순히 제품의 기능을 나열하기보다 제품 하나하나에 스토리를 담았다. 그렇게 제품 상세페이지를 제작하니 오히려 MD가 고가의 수입제품으로 오해를 하고 손사래를 쳤다.
“저희 쪽에 입고하기에는 너무 고급제품인 것 같습니다.”
“담당자님, 저희가 품질은 고급이지만 고가는 아니에요. 보시면 저희가 오히려 경쟁사 대비 합리적인 가격인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당시 MD를 포함 생활용품 시장에서는 생활공작소의 이런 시도가 매우 신선하면서도 혼란스러웠다. 결국, 시장의 평가를 받아보기로 하고 소비자들에게 선보였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그게 바로 생활공작소의 제습제이다. 장롱 안 깊숙이 넣어두는 제품에 고가제품에서나 볼 수 있는 기획력과 디자인을 쏟아냈으니 경쟁사들과 유통사들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제품의 기본: '디자인', '성분' 그리고 '가격'
생활공작소는 직관적 디자인, 안전성이 검증된 최소한의 성분, 합리적 가격의 제품을 추구한다. 어디서든 주변 인테리어와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는 블랙 앤 화이트 톤의 심플함이 생활공작소 디자인의 특징이다. 간결한 디자인 덕분에 브랜드는 더욱 선명하게 소비자에게 각인된다. 또한, 명확한 기준을 갖고 좋은 성분을 무작정 더하기보다는 나쁜 성분을 걸러내고, 불필요한 성분을 빼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모두가 안심할 수 있는 안전한 성분으로 기본에 충실한 제품이 결국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활용품은 반복적으로 구매하기 때문에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것이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생활공작소는 제품을 기획할 때 세 가지 요소를 고려한다. 디자인, 성분, 그리고 가격이다. 이 세 가지 요소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야만 브랜드 철학에 부합하는 제품이 탄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구성원들 간에는 디자인이나 성분에 더 중점을 두고 싶은 사람들이 있고, 반대로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싶은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구성원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브랜드의 '기본’을 되새기며 최적의 균형점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토론한다. 처음에는 의견 충돌로 인해 감정이 상하거나 고집부리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구성원들은 깨달았다. 소비자의 관점에서 충실히 고민하고 솔직하게 의견을 나누는 것이 소비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생활공작소 제품은 독창적이면서도 간결한 디자인으로 생활용품업계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기가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제품을 모방하는 수많은 브랜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들은 단순히 디자인만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브랜드명, 심지어 마케팅 기법까지도 복제하고 있다. 그들의 모방 수법은 점점 정교해져서 소비자들이 구매할 때 혼동을 겪게 만든다. 어느 날은 품질 문제로 화가 난 고객이 전화를 걸어왔는데, 확인해보니 제품이 아니라 모방 제품이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분노와 함께 무력감을 느낀다. 모방 제품은 법적으로 금지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이룬 성과가 너무 빛나기 때문에 그들은 계속해서 나타난다.
가장 효과적인 브랜드 홍보 채널은 고객
CMO 설문조사에 따르면 B2C 제품 회사는 매출의 11.9%를 마케팅에 지출한다. 그런데 생활공작소는 마케팅 비용이 전체 매출에서 1%를 넘긴 적이 거의 없다. 한정된 자원으로 운영하다 보니 막대한 비용을 무분별하게 집행하기보다 제품이 가장 매력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장소와 상황에 집중하였다.
기존의 생활용품 광고는 효과를 강조하는 때가 빠지는 이미지, 효소들이 작용하는 이미지들을 삽입하며 Before와 After를 비교하는 방식이 자주 쓰이는 뻔한 방식이었다. 그런데 생활공작소는 기존의 틀에서 탈피하여 인테리어가 잘 되어있는 집에 생활공작소 제품을 올려놓고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당신의 집에 우리 제품이 올려져 있다면 이런 모습일 겁니다’라고 상상하게 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생활공작소 제품은 집안 어디에 두어도 어울린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SNS에 노출이 됐다. 생각해보면 주위에 주방세제를 샀다고, 제습제를 샀다고 SNS에 제품을 찍어서 올리는 일이 거의 없는데 생활공작소 제품만큼은 오브제처럼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게 된다. 덕분에 '오늘의 집' 같은 곳에서 인테리어 사진을 올릴 때 자주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또한, 제품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유쾌한 키치문구 덕분에 고객들이 자발적으로 SNS에 공유하고 있다. 이런 요소들이 생활공작소를 소유하고 공유하고 싶은 브랜드로 만들었다.
자신을 스스로 '친환경 브랜드'라고 말하지 않는 기업
그 어느 때보다 친환경을 원하는 소비자는 점점 늘고 있다.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라벨을 없앤 생수는 출시 후 판매량이 1년 사이에 500%나 급증하기도 했다. 특히 젊은 세대는 환경에 더 민감한데 한 설문조사를 보면, 환경적 가치를 위해서라면 84.7%가 비용을 더 내겠다고 했다. 이런 소비자들의 착한 소비를 기만하는 일부 기업들이 실제로는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제품을 생산하면서도 광고 등을 통해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내세우는 일명 ‘그린워싱’이 논란이 되었다.
그런데 정작 환경에 대해 누구보다 진심인 생활공작소는 단 한 번도 자신을 '친환경 브랜드'라고 명명한 적이 없다. 그저 ‘환경을 위해 고민하고 실천해 나가고 있는 브랜드’라고 말한다. 주요 제품이 생활용품이다 보니 불가피하게 플라스틱 용기의 사용률이 높은 편이어서 문제의식과 책임감을 느끼고 개선하고자 제품연구에 힘쓰고 있다.
현재 환경을 고려해 2019년 6월 말부터 비닐 에어캡 대신 자연 분해되는 FSC(산림관리 친환경인증)을 받은 친환경 종이 완충 포장재를 도입했다. 또한, 환경부에서 인증받은 친환경 주방세제와 PCR(사용 후 버려진 플라스틱이나 유리를 재활용) 플라스틱을 50% 섞은 용기로 만든 주방세제 에코팩도 출시하여 호응을 얻고 있다. 앞으로 더 다양한 분야에서 친환경 제품을 출시는 물론 친환경 브랜드와 협업, 폐플라스틱 수거를 통한 자원순환 등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움직임을 더욱 적극적으로 늘려갈 계획이다.
세계적인 디자인 어워드에서 연달아 수상한 기획력과 디자인 경쟁력
최근 생활공작소는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IF, Reddot, IDEA) 중 하나인 IF Design Award에서 '패키지 디자인'과 '생곰이 핸드워시‘로 두 개 부문에서 본상 수상을 했다. 지난 독일 디자인 어워드(GDA)에 이은 두 번째 글로벌 어워드 수상이다.
그리고 이어서 생활공작소 백인박스(Bag in Box) 패키지 디자인이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디자인상인 2023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본상을 수상했다. 이 백인박스 패키지 디자인은 전략적 투자자인 CJ ENM의 ESG 지원사업의 지원금을 바탕으로 개발한 패키지이다.
생활공작소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제품을 만들 때, 가격과 성분뿐만 아니라 디자인도 부담스럽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디에 두어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을 추구한다. 이러한 생활공작소의 철학은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으며, 세계적인 디자인 어워드에서 인정받은 것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생활공작소
생활공작소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도 노리고 있다. 싱가포르, 홍콩, 대만, 일본, 동남아시아 등 10여 개국의 온라인과 오프라인 유통 채널에 진출했으며, 2021년 9월에는 몽골의 울란바토르에 있는 이마트 3개점에 입점했다. 11월에는 러시아 최대의 온라인 쇼핑몰 ‘오존’(OZON)에, 2022년 2월에는 미국 아마존에 입점했다. 현지에서는 생활공작소의 제품들이 친환경적이고 실용적이라는 호평을 받고 있지만, 아직은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그래서 현지 유통사와 협력하여 샘플링이나 소분 판매와 같은 국가별 맞춤 전략으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생활공작소가 이룬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는 자체 연구개발 환경을 구축한 것이다. 최소생산 수량에 구애받지 않고 친환경적인 제품들을 실험하고 소량생산할 수 있게 되어, 신제품 출시 속도를 높일 수 있게 되었다. 궁극적으로는 생활에 필요한 모든 유형의 제품과 무형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디자이너 디터 람스가 말한 바와 같이 혁신적이면서 유용하고, 아름답면서 이해하기 쉽고, 정직하면서 친환경적인 최소한의 디자인을 생활공작소가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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