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내 '우리' 안에 또 다른 '우리'는 없습니다."
"회사에 소속된 모든 구성원이 '우리'입니다."
올해 회사의 규모가 성장을 거듭하며 '우리 팀', '우리 팀원', '우리 애들'이라는 표현을 심심찮게 접했다. 최근 한 미팅에서 '우리'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사용되며 회사 내 특정 인원들의 입장만 다뤄지자 지친 나머지 꾹꾹 눌러두었던 생각이 입 밖으로 나왔다. 미팅에 참여한 분들의 얼굴에서 순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데도 앞으로 지속해서 언급할 필요를 느꼈다. 어쩌면 '우리'라는 단어가 회사에서는 조심스럽게 사용되거나 혹은 회사 내 모든 구성원을 의미한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지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기업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다 같은 회사에 속했는데 그 안에 또 다른 '우리'가 만들어지는 걸까? 직원 수가 만 명, 천명도 아니고 심지어 백 명도 채 되지 않는 스타트업에 근무하는데 말이다. 왜 그토록 '우리'와 '우리가 아닌 그 외'로 나누는 이분법에 집착하는지 고민해봤다.
내가 발견한 첫 번째 이유는 근거가 약한 자신의 주장에 객관성을 더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단순한 개인의 의견이 아닌 복수의 의견으로 포장하여 전달하면 조금 더 설득력이 상승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물에 설탕 한 숟가락 넣는다고 꿀이 되지는 않는다. 논리적이고 합당한 의견은 굳이 복수의 의견이 아닌 개인의 의견이라고 할지라도 모두가 경청한다.
두 번째 이유는 이러한 의견 개진이 자신의 안위가 아닌 이타적인 목적인 것처럼 보이기 위함이다. 마치 개인적인 요청사항이 아닌 대의를 위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진정 대의를 위한 것이라면 일부만 해당하는 좁은 '우리'가 아닌 전체를 의미하는 '우리'가 더 적합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합리적이고 진정성이 있다면 굳이 '우리'라는 가면을 씌우지 않아도 된다.
세번째 이유는 동조세력을 얻기 위함이다. '우리'라는 울타리 안 구성원들은 최소한 자신을 지지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렇게 울타리를 칠수록 피아식별이 명확해지고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은 불쾌함 혹은 위화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울타리 밖과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거나 울타리 안에 갇히는 것이 불편한 울타리 안 구성원들로 인해 울타리 내에서도 분열이 시작한다. 결국 '우리'라고 불리는 울타리 내 구성원들마저 동상이몽을 꾸게 되는 것이다.
상법 제169조(회사의 의의)에 따르면 "회사"란 상행위나 그 밖의 영리를 추구하는 생산경제의 단위체를 말한다. 국내 상법의 회사의 정의가 너무 노골적으로 수익성을 추구한다고 느껴진다면 해외로 눈을 돌려보자. 회사를 의미하는 다양한 영어표현이 있지만 그 중 가장 익숙한 단어가 company일 것이다. Company는 '함께 또는 같이'라는 뜻을 가진 'com'과 '빵'을 의미하는 'panis'의 합성어로 직역하면 '빵을 같이 먹는'이다. 빵을 같이 나눠먹는다는 것은 어쩌면 생사를 함께하는 공동운명체 또는 가족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와 남을 구분 짓는 '배타적인 우리'보다 남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포괄적인 우리'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당연시될 수는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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