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평전 '뜻을 높게'
나는 스타트업에 근무하고 스타트업에 대한 글을 쓴다. 그래서 손정의라는 사람에 대해 제법 잘 알고 있다고 믿었다.
내가 아는 손정의 회장은 다음과 같다.
한국계 일본인 사업가
소프트뱅크그룹의 창립자
알리바바의 초창기 투자자
소프트뱅크 호크스 구단의 소유주
세계 최대 벤처캐피털(VC) 비전펀드를 움직이는 사람
하지만 그건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최근 '청담숲'이라는 출판사에서 '손정의 평전 - 뜻을 높게'라는 책을 받았다. 무려 500페이지에 육박하는 책이었다. 책의 두께를 보고 더럭 겁부터 났지만, 막상 첫 페이지를 넘기자 그다음은 무척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일본의 유명 저널리스트가 34년간의 독점 취재를 통해 손정의 삶과 비전을 한 권으로 정리한 책이다. 압도적인 취재량으로 손정의라는 인물에 대해 입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 무엇보다 34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며 사업가로서 성숙해지는 손정의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다.
1981년 손정의가 일본에도 반드시 컴퓨터 시대가 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혈혈단신으로 시작한 소프트뱅크가 이듬해인 1982년에는 직원 30명, 매출 20억 엔으로 성장했다. 1983년에는 직원 125명과 매출 45억 엔, 1985년에는 직원 210명과 매출 117억 엔으로 커졌다. 그 와중에 만성간염으로 3년간 입원과 퇴원을 거듭하고 굳은 의지로 완치에 성공하여 경영에 복귀하였다. 창업하고 매출을 조 단위로 세는 기업을 만들겠다고 열변을 토하였는데 25년 후 현실이 되었다.
책은 어린 시절 손정의에 대해서도 다룬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부자이기에 당연히 최소 중산층에서 자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번지수조차 없는 판자촌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나마 가세가 회복한 고등학교 재학시절 일생일대의 결정을 내린다. 일본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한국 국적으로 인해 인정받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가족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 유학을 강행하였다.
"유한한 인생인 만큼 한 점의 후회도 남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다."
손정의의 결심에서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짐작할 수 있다. 4년제인 미국 고등학교에 2학년으로 편입하였지만, 하루라도 빨리 대학에 진학하고 싶은 마음에 교장을 찾아갔다. 3학년으로 월반을 요청하였는데 동양인답지 않은 대담한 발언과 적극적인 태도에 놀란 교장은 허락하였다. 손정의가 교과서를 놓지 않고 공부에 매진하자 며칠 후 교장이 오히려 앞장서 다시 4학년으로 특별 진급하였다. 손정의는 기세를 몰아 검정고시를 치르며 하루빨리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대학 진학을 서둘렀다. 결국, 검정고시를 합격하였는데 고등학교 입학부터 졸업까지 고작 3주가 걸렸다. 3년이 아닌 3주 말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며 미국에서 보낸 내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나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단순히 높은 학점을 유지하고 AP수업(대학과목 선이수제)을 통해 대학교 학점을 미리 확보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지난 시절이 아쉽고 부끄러웠다. 그저 주어진 틀에서 최선을 다했을뿐 그이상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손정의 평전을 통해 손정의가 어떻게 성장하고 삶을 대하는 태도는 어땠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환경이 손정의라는 천재를 만든 것이 아니었다. 손정의는 주어진 환경이 무색할 만큼 노력으로 모든 제약을 초월했다.
"저는 매 순간 비전을 쫓아 다음 10년을 위해서 제 몸과 마음의 99%를 쏟아붇고 있습니다. 모두 미야우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었지요."
이 책은 단순히 손정의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뱅크를 움직이는 손정의의 파트너들 역시 조명을 비춘다. 론 피셔, 라지브 미스라, 마르셀로 클라우어, 미야우치 겐, 미야카와 준이치 등 손정의의 비전에 공감하고 그를 적극 지원하고 충언을 아끼지 않는 인물들이 나온다. 소프트뱅크에는 손정의 DNA가 새겨졌지만, 소프트뱅크의 팔과 다리 역할을 하는 조력자들이 있었기에 손정의가 온전히 미래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앞날은 읽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고민하면서 매일 조금씩 수정하고 선수를 쳐서 나가야만 합니다."(2021년 3월 14일)
최근 소프트뱅크가 이전 같지 않다고 사람들은 평한다. 하지만 오직 미래에만 집중하며, 무모할 만큼 노력하는 손정의와 그의 동료들을 보면 이 환난을 이겨내고 그가 입버릇처럼 말한 300년을 지속하는 기업은 더 이상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
"전진, 한 번밖에 없는 인생에서 다른 선택지는 의미가 없다. 종종 돌아가더라도 무조건 전진."(2020년 9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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