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환상을 기획하는 곳
디즈니는 미국에서 단일 매장으로는 가장 많은 직원을 거느리고 있다. 디즈니월드 직원만 5만 5천 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디즈니에서는 직원을 '캐스트 멤버' 즉 등장인물이라고 부른다.
정말 드라마틱한 직함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은 극 중 연기자처럼 자기가 맡은 역할을 따내기 위해 오디션을 보고 리허설까지 해야 한다. 대사는 물론이고 극 인물들이 속한 세계관도 숙지해야 한다. 디즈니가 얼마나 치밀하게 이들 캐스트 멤버들을 관리하는지 알 수 있는 일례로 일반인들이 평상복을 입은 캐스트 멤버들을 보고 환상이 깨지는 상황을 방지하고자 디즈니월드 내 약 3.2km의 터널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참고로, 1970년대 DMZ 내 북한이 기습남침용으로 뚫어놓은 제2땅굴이 3.5km이다. 어느 곳에서는 국가차원에서 하는 일을 미대륙에서는 한 기업이 한다. 캐스트 멤버들은 이 터널을 통해 방문객들과 접촉하지 않고 정해진 위치로 이동한다고 한다.
그리고 캐스트 멤버들은 절대 방문객들의 질문에 모른다고 답하는 법이 없다. 모르는 질문을 하더라도 다른 캐스트 멤버를 불러서 묻는 등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답을 제공하고자 노력한다. 혹여 방문객들이 엉뚱한 질문을 하더라도 결코 방문객들이 민망하거나 불쾌하지 않도록 성심성의껏 답한다. 예로, "3시 퍼레이드는 언제 시작하나요?"라고 묻더라도 친절하게 "3시에 시작합니다"라고 답한다. 정말 디즈니는 꿈이 현실이 되는 곳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더 크고 더 넓어 보이는 마법
5만 5천 명의 캐스트 멤버들이 맞이하는 디즈니월드를 입장하며 나는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미국은 아주 땅이 넓어서 지하주차장도 거의 없고 주차장도 평지에 넓게 만든다. 디즈니월드 주차장도 웬만한 축구장 5개 이상 되는 규모로 너무 넓어서 트램을 타고 입구로 이동을 해야 할 정도다. 디즈니월드 내 테마파트 중 매직킹덤의 주차장은 1만 2천대가 주차가 가능한데 약 15만 3천 평으로 매직킹덤 자체보다 주차장이 더 크다. 참고로 어린이대공원은 정문 주차장, 상상나라 주차장, 후문 주차장, 구의 문 주차장 모두 합쳐 985대가 주차 가능하다. 그렇게 넓고 넓은 땅을 자랑하는데 디즈니월드의 입구는 왜 미세하게 경사가 있을까? 사실 이 경사진 입구는 디즈니가 의도한 것으로 인위적 원근법(Forced Persepective)이라는 착시현상을 위해서다. 이를 위해 건물들도 약간 기울어져 있다.
이런 착시현상으로 인해 사물들이 실제보다 더 멀리 혹은 더 가까이 보이게 된다. 그래서 디즈니월드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입장할 때는 입장로가 길어 보이지만 퇴장할 때는 비교적 짧아 보이는 것이다. 신데렐라의 성도 인위적 원근법을 이용해 실제보다 더 높아 보인다. 맨 꼭대기의 첨탑은 실물보다 두배나 더 커 보이고 건물의 다른 부분들도 기울게 만들어 더 멀리 혹은 더 높아 보이는 착시현상을 만들어 낸다. 자세히 보면 성의 위층이 아래층의 창과 같은 정사각형 모양임에도 불구하고 더 작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작은 디테일들이 디즈니월드를 조금 더 신비스롭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몰입이 무엇인지 보여준 아바타
이번에 디즈니월드를 방문한 목적은 2017년 5월 개장한 디즈니월드 테마 공간 '판도라'를 직접 보기 위해서였다. 판도라는 영화 '아바타'에 등장하는 머나먼 행성으로, 영화의 배경이기도 하다. 판도라에 들어서자 아바타의 상징인 떠다니는 섬을 볼 수 있었는데 정말 중력을 거스르고 공중에 떠있는 듯했다.
이런 연출이 가능했던 것은 총 1만 4,690평에 달하는 판도라 프로젝트에 제임스 카메론 감독과 프로듀서 존 랜도를 포함한 아바타 제작진이 참여해서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단언컨대 그 어떤 테마파크보다 정교했고 방문객의 경험을 수백 번 고민한 흔적이 느껴졌다. 이 중 절정은 아바타의 Flight of Passge라고 하는 3D 플라잉 시뮬레이터 어트랙션인데 패스트 패스 예약을 하고 싶었지만 지금 예약하면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결국 현장에서 줄을 서는 방법 외엔 없었다. 180분이라는 긴 시간을 대기하였지만 아주 못 버틸 정도로 지루하지는 않았다. 대기하는 동안에도 방문객으로 하여금 더 몰입할 수 있도록 영화 '아바타'와 어트랙션에 대한 pre-show를 끊임없이 제공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탑승에 가까워질수록 pre-show의 요구사항이 구체화되며 방문객의 참여를 촉구한다. 특정구역에 들어서면 팔을 움직이라고 명령하고 이후 정해진 위치에 서라고 하는 등 아바타의 배경에 대해 계속 참여식 교육을 한다. 군필이라면 훈련소의 입소 경험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물론 훈련소의 긴장감과 암울함 대신 감탄과 경이로움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이러한 Flight of Passge 기획자들의 배려로 어트랙션에 탑승하기 전 나와 같은 방문객들이 충분히 어트랙션의 배경을 인지하고 스토리의 전개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3시간의 인고의 시간을 보내면 마침내 Ikran의 등에 탑승할 수 있는 방으로 안내된다. Ikran의 등에 올라타고 링크가 완료되면 어두워졌다가 밝은 빛이 몇 번 반짝인다. 그리고 어느새 영화 아바타 속 세상이 눈 앞에 펼쳐진다. 분명 Ikran의 등 위에 올라타기 전까지 앞에 벽이 있었는데 어느새 그 벽이 사라지고 전혀 다른 세상이 열려 있었다. 아마도 극적인 연출을 위해 스크린 벽이 개폐하는 것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 어두운 곳에서 앞이 아닌 밑을 보도록 밑에서 빛을 쏘는 것 같았다. 물론 어두운 곳에 동공이 커지고 밝은 곳에서 동공이 작아지는 그 찰나를 노린 것 같다. 차를 운행할 때 긴 지하터널을 지나 빛이 가득한 터널 밖으로 나갈 때 순간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를 상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자연스럽게 전환이 되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올라탄 Ikran의 숨이 종아리에 느껴지고 하늘 위를 날아다닐 땐 바람이 느껴지는 것이 마치 영화 속에 들어간 것 같았다. 몰입을 위해 자기 주문이 필요 없는 완벽에 가까운 이행(移行)이었다. 절벽을 따라 수직으로 낙하하는 비행을 할 때는 잠시나마 두려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멀리서 한국 관광객의 "엄마!~"하는 외마디 비명이 들린다. 몰입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짧게나마 그분의 성장배경과 지구 반대편의 가족에 대한 향수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약 5분의 비행을 마치면 너무 아쉬워 현실을 부정하고 싶을 정도다. 물론 어트랙션의 분량도 노래 한 곡 정도로 방문객이 극도로 집중하고 피로도가 높지 않으며 아쉬워할 정도로 치밀하게 설계하였다. 국내외 다수의 플라잉 시뮬레이터 어트랙션에 참여했던 대표님은 남다른 감동이 있었는지 촉촉한 눈으로 회사가 앞으로 지향해야 하는 방향은 Flight of Passage 어트랙션처럼 3시간을 기다리더라도 전혀 아깝지 않은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3시간을 기다려 Flight of Passage 어트랙션에 다시 탑승했다. 해당 어트랙션을 2번 타니 하루가 다 지났다.
글을 마치며
니켈로데온이 2001년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10세 미국 어린이는 평균적으로 300~400개의 브랜드를 안다고 한다. 그리고 14세가 되면 10명 중 9명이 선호하는 브랜드가 있다. 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이들 자녀 가운데 2/3은 3세 때부터 1/3은 2세 때부터 브랜드를 인지한다. 하물며 어려서부터 디즈니의 캐릭터들과 세계관을 접하며 성장한 사람들은 디즈니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클까? 그래서 성인이 되어도 자연스럽게 디즈니 캐릭터 굿즈를 구매하고 애착을 갖는 것이 아닐까?
이런 부분을 두고 디즈니가 감성적으로만 접근했다고 보기엔 어렵다. 그들이 만드는 캐릭터, 캐릭터가 속한 세계의 세계관 그리고 이를 활용한 콘텐츠들은 감성적일 뿐만 아니라 설득력까지 겸비했다. 그리고 그런 설득력을 더 증폭시키는 것은 아바타 어트랙션을 통해 확인한 기획의 디테일이라고 생각한다. 국내에서도 평생 함께 할 수 있는 라이프타임 캐릭터들이 촘촘한 세계관과 함께 전 세계를 무대로 꾸준히 소개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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